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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근 《사유 공간》

2020/08/21 - 2020/10/25

장소
: MoPS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
기획
: 한미사진미술관
참여작가
: 고명근

사진을 주 매체로 작업하는 중진, 신진작가를 주목해온 MoPS가 네 번째 기획전으로 ‘사진조각Photo sculpture’이라는 독자적인 장르를 구축해온 고명근(1964~ ) 작가의 전시를 연다. ‘사진’과 ‘입체’ 그리고 ‘공간’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는 고명근의 작업은 한 아름 크기의 투명한 사진 입체조형물로 구체화된다. 평면 사진과 입체를 연결해 공간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한 이 조형물들은 실재하는 장소의 물리적 재현을 넘어 장소에 관한 개인의 경험과 감각을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는 지난 30여 년간 내용과 형식의 절묘한 교집합을 탐색하는 사이, 어느새 원숙기에 접어든 작가의 근작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고명근의 사진조각은 그 명칭도, 제작 방식도 그가 처음 조각과 사진의 연결을 시도한 1980년대 후반부터 정립해온 것이다. 일반적인 인화지 대신 OHP 필름에 디지털 사진 이미지를 출력한 후 양면을 플렉시 글라스로 압착해 만든 아크릴 패널에는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작가만의 제작 노하우가 담겨있다. 이 패널들을 원하는 입체 구조물 형태에 맞게 재단해 뜨겁게 달군 인두로 각 모서리를 접합하면 투명한 사진조각이 완성된다. 물성을 가진 조각과 찰나를 포착한 디지털 사진의 조합은, 우리가 현실이라 간주하는 것이 손에 잡히지 않는 환영에 불과하다는 작가의 오래된 믿음을 구현한다. 이번 전시작들은 형태적인 측면에서 2010년 이후 고명근이 보여 온 사진조각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스’, ‘대칭’, ‘투명’이라는 형식적 근간을 지키며 구조물의 형태를 조금 더 자유롭게 변형시킨 정도다. 내용의 측면에서는 개인이 홀로 등장하는 작품들을 한데 모았다. 누군가 홀로 머문 공간의 찰나를 보여주는 작품들은 ‘사유 공간’이라는 제목 아래 ‘홀로 있음’에 대한 여러 가지 단상을 풀어낸다. 사진조각들이 시각화한 사유공간은 개인이 잠시 점유한 물리적 사유私有공간일수도, 홀로 있는 가운데 깊은 사유思惟를 끌어낸 개인의 심리적 공간일수도 있다. 따라서 그가 이야기하는 ‘사유’는 소유하는 사유私有와 생각하는 사유思惟를 모두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사람을 품은 공간, 공간에 머무는 사람. 이 두 관계성을 풀어내기 위해 고명근이 홀로 있는 개인을 소재화한 건 주목할 만하다. 현대사회의 단면을 시각화하며 독자적인 의미를 구축해온 그의 작업은 복제 이미지로 넘쳐나는 현실과 그 현실을 모니터 너머의 가상 이미지로 이해하는 현대인의 의식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투명 아크릴 너머로 중첩되는 이미지들은 현대인이 현실이라 받아들이는 환영의 공간이며, 그 안에 등장하는 개인은 각자의 현실을 감당하며 어느새 홀로 있는 것이 더 편안하고 익숙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개인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공간은 집단의 역사적 사건이나 기억에서 비롯된 ‘같은’ 장소가 아니라 지극히 개별적이고 단절된 ‘다른’ 장소들이다. 보는 각도나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투명한 조각의 공간성은 이러한 개별 기억의 단편성에 대한 절묘한 비유다. 조형물의 피부에 해당하는 이미지들이 중첩하며 미묘한 음영과 색채의 변화를 만들 듯, 한 공간에서 개인의 흔적은 타인의 흔적에 의해 포개지거나 사라지고, 공간에 대한 기억 또한 덧씌워지고 변형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공간과 관계 맺는 경험이 이처럼 절묘하게 고명근의 투명한 조각 안에 담겨있다. 한편, 이 공간은 누구나 사유思惟할 수 있지만, 누구도 사유私有할 수 없는 공간이다. 단편적인 경험과 기억들로 덧씌워지는 것은 덧없이 소멸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유동하는 공간은 무언가로 항상 채워져 있는 것 같지만 빈 공간이며, 개인의 소유대상이 될 수 없다. 고명근은 이번 전시를 통해 채워져 있지만 비어있는 공간의 역설. 무언가의 편재 가운데서도 부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고독한 현대인의 역설을 보여준다.